Yoon Ec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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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법정에 들어갑니다. 증거로 수집한 자료들을 가방에서 꺼냅니다. 검사가 예상 공격에 따라 변론할 시나리오를 다시금 확인해봅니다. 살짝 피고의 현재 상태도 확인해놓습니다. 이제 재판이 열립니다. 저는 제 연구의 변호인이 되어 법정에 서 있습니다.

논문을 쓸 때 건, 학위 논문 심사를 받을 때 건, 학회 발표를 할 때 건 저는 법정에 서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 연구가 가치 있음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제 연구에서 의심 받는 여러 혐의들 – 예를 들어, 적절한 연구 방법과 통계 분석을 썼는지, 자료 해석이 올바른지, 연구 목적이 타당한지, 연구에 거짓이 없는지 등 – 에 대해 디펜스 합니다. 제가 준비한 자료와 논리에 대해서 심사위원들은 검사가 되어 연구의 혐의점들을 다시 집어냅니다. 그들은 매우 집요하며, 피고로 하여금 스스로 혐의점을 인정하도록 – 즉 연구가 가치 없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 만드는데 매우 능합니다. 다시금 저는 변호인이 되어 혐의점을 하나 하나씩 풀고, 알리바이를 입증합니다. 이러한 논리적 공방이 오고 가다가 최종 판결을 받게 됩니다. 제 연구가 무죄이거나 유죄인지.

법정에서 절대적인 사실은 없습니다. 대신, 법정에서의 사실은 검사와 변호인 사이 논증 사이에서 결정됩니다. 양쪽에서 각각 수집한 증거와 증언, 판례를 바탕으로 구성된 논리들 중에서, 조금 더 그럴 듯한 쪽의 논리가 사실로 채택됩니다. 또한 한쪽에는 권력이 개입되기도 합니다. 보통 학계에서의 영향력과 명성이 높은 학자의 연구는 보다 수월하게 수용되는 법입니다. 간혹 황우석 사건이나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과 같이 증거가 조작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법정에서의 사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사실에 접근하는 과정이며, 합의를 통해서 최대한 절대적 사실과 근접하도록 구성된 것입니다.

자연 과학적 연구에서조차도 감히 절대적인 사실을 단언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인정되는 일부 보편적인 법칙을 제외하고는, 과학적 발견에 절대적인 것이 없습니다. 다만 좀 더 가능성이 높고, 설득력 있는 사실 만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과학적 연구도 근본적으로 법정 싸움과 동일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사실에 대하여 차근히 증거(실험 자료), 증언(인터뷰), 판례(타 연구 사례 비교)를 수집한 후 가장 그럴 듯한 사실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논문 심사 과정을 통해서 저자가 도출한 사실의 타당성이 검증됩니다. 간혹 과학은 불변의 진리라고 믿어지며, 이러한 믿음은 인문학이나 과학사회학을 중심으로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만나본 어떤 과학자도 감히 과학을 과신하지 않습니다. 과학 연구에서 must라는 조동사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과학 연구들은 would, could, might 등의 조동사를 사용하여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결론을 내세웁니다. 개별 과학 연구들이 어떠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 모든 원리를 구명할 수 없을 뿐 더러, 연구자가 제안한 그 원리가 다른 모든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학 연구는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과학적 발견 또한 역시 하나의 주장이며 설득의 영역에 있기 때문입니다.

통계는 법정에서 강력한 권력 중에 하나입니다. “Statistics: The only science that enables different experts using the same figures to draw different conclusions.” – Evan Esar (통계는 여러 전문가들이 같은 그림에서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과학이다.) 똑같은 자료라도, 어떠한 통계 기법을 쓰느냐에 따라서 판결이 정반대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즉, 통계에 정답은 없습니다. 저자의 목적, 주장에 따라서 다른 통계 기법은 선택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자료는 저자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적절한 통계 기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변호인은 다양한 통계 기법의 원리와 그의 장단점, 적용 가능성 등을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통계는 변호인이 법정에서 행사할 수 있는 강력한 지식 권력입니다.

다시 법정이 열립니다. 간혹 저 자신도, 제가 변호하는 피고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피고의 알리바이가 잘 맞지 않듯이, 실험 결과가 부족하거나 이상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자료가 불확실하거나, 연구의 한계, 혹은 실험이 무엇인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다소 불확실한 부분들이 있더라도, 그러나 법정에 서는 순간 저는 제 데이터들을 믿습니다. 연구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저는 최선을 다해서 제 피고의 가치가 가능한 정도까지 증명될 수 있도록 변호합니다. 변호인은 피고의 마지막 버팀목이 되듯이, 연구자가 자신의 자료를 믿어주지 못한다면, 누가 그 자료를 믿겠습니까. 학자적 거짓에 대한 경계심을 지니되, 자신의 연구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피고를 대한다면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알리바이가 어느 순간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법정에서 변호인이 해야 할 일입니다.

고대 대학원신문 198호 기고글

2014.9.